목장교안

2025년 10월 19일 목장교안
2025-10-22 17:17:59
평촌새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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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위기(마12:43-45, 사2:1-3)

 

2025년 10월 19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 말씀은 <빈 집에 대한 비유>였다. 비유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사람 속에 더러운 귀신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 속에 더러운 귀신이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마음과 인격의 상태가 “더러운” 귀신이 거하기에 너무 편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떠나게 된다. 왜 나갔는지 몰라도 무언가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갔다가 은혜받고 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불편해진 악한 영이 딴 곳을 알아보려고 잠깐 떠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두루 다녀보았지만 그곳만한 곳을 얻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그 집이 싹 정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확 바뀐 거다. 그건 아마도 그 더러운 귀신에게는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일은 그 집에 주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더러운 귀신은 가서 자신보다 더 악한 귀신을 일곱이나 데리고 들어왔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되었다.’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바르게 해석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 비유를 가지고 “마음이 공허하십니까? 주의하십시오! 그런 시간이 사탄이 틈타기 쉬운 순간입니다!”라는 식의 심리적 메시지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은 이 비유를 “마음을 비워두지 마십시오. 우리 마음에는 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마귀가 들어와 주인 노릇합니다.”라는 극히 당연한 신학적 메시지로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그 두 경우 모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결론적 적용을 말할 때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도 더 많이 하는 것”을 답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비유를 “그러므로 성경 읽기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아침 큐티를 하십시오!” 라는 식의 메시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 말 자체는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비유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비유의 뜻은 위의 결론과 적용과 오히려 반대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초점이 어긋나 버린 이유는 이 비유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 지난주일 설교를 들을 때 당신은 설교자가 강조하는 핵심을 잘 이해했는가? 그것은 무엇이었나?

2. 앞에서 그런 결론과 적용을 옳지 않다고 한 이유는 주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게 된 배경 때문이다. 주님이 이런 비유를 하신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배척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랜 동안 말씀 묵상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기도도 했다. 그리고 제사도 열심히 드리고, 안식일도 준수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지켜온 그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 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이 열심히 드려온 제사의 본체가 오셨는데도 그 분을 거부했다. 그들의 말씀 묵상과 기도, 안식일 지킴이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경건을 위한 그들의 모든 결단과 실천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잘 소제된 빈집>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맥락에서 하신 이 비유가 단순히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더욱 열심히 말씀보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경건의 행위들을 우리도 더욱 열심히 하자는 것이 되니 비유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질문) 당신은 말씀을 더 읽고 기도 더 많이 하자는 그 말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이 이 비유의 결론일 수는 없다는 이 말을 당신은 잘 이해했나?

3. 그렇다면 이 비유의 결론과 적용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비유의 결론과 적용은 이런 적용적 질문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말씀 묵상과 기도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말씀 읽기와 기도생활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인가?’ 

 “난 오늘도 기도 했다.” “말씀도 묵상했다.” 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 말씀의 뜻은 이것이다!”라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당신은 이 비유를 곰곰이 자신에게 적용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에 주님으로 모셔들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질문)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당신은 어떤 상태일까? 당신의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은 당신 안에 주님이 더욱 주님되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말씀 묵상과 기도 실행만으로 만족하는 어떤 것인가? 묵상과 기도를 통해 당신 안에 예수님의 주님 되심은 점점 더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가? 지금 당장 100%는 아니라도 말이다. 마치 핸드폰을 충전하듯 말이다.
 
4. 질문) 비유가 지적하는 바로 이 점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의 교회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을 것 같은가? 우리가 우리의 이웃 교회나 다른 성도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우리는 성경과 자신을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

5. 우리가 본 이런 현상은 주님 당시에만 있었던 현상이 아니다. 그런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있고, 구약 교회에도 있었다. 우리는 구약 선지서를 통해서도 곳곳에서 그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지난 주일 이사야서 2:2-3을 보았다. 그 본문은 이사야 1장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사야서 1장은 이스라엘의 형식화된 경건에 대한 질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열심히 말씀보고, 성전에 올라와서 제사하고, 절기와 안식일을 잘 지키지만 그들 속에 여호와 하나님은 없었다. 경건의 모습은 있었지만 경건의 실제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장에서 선지자는 미래에 도래할 한 시대의 예배 회복에 대해 말한다. 미래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방에서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올 것인데, 그때 그들은 성전으로 올라오면서 서로 격려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주님이 기대하는 미래의 예배 회복이 보인다. 그 예배는 단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가 전부가 아니다. 그 때의 예배는 주의 백성들이 성전에 오르되, 거기서 제사만 드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길(ways)을 배운다. 그리고 그 길로 행하는 것이다. 이 때 여호와의 길은 야곱의 하나님이 행하신 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실 때 그를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이 걸어야 했던 길이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미래에 예배자들은 가망 없는 죄인(야곱)을 사랑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야곱을 사랑하기 위해 걸으셔야 했던 길에 대해 배우고, 그 길로 행하기를 기대하여 올라온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 그 사랑의 마음과 길을 배우고 감격하며 그 길을 따라 걷기 힘쓰는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참된 신앙은 단지 “예수 믿고 천당!”이 아니라는 것이다(여기에는 삶이 없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만, 그 믿음은 야곱 같은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며, 그것은 그분이 걸은 길에 관해 듣고 감격해서 우리도 그 길을 걷기를 결단하는 것이다.
질문) 당신의 예배를 돌아보라. 당신의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예배 드린 것으로 끝나는 예배인가? 아니면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예배인가?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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