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7절)
2025년 5월 18일 주간목장교안
1. 지난 주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었다. 지난주의 말씀 중에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나눔) 각자 받은 감동의 포인트들을 서로 나누어보자(이런 열린 질문은 각자 어떤 부분에서 은혜받고 있는지를 들어봄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2. 지난주 설교에서는 팔복을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후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어떤 내면의 변화를 겪어 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점점 깊어지면서 결국 밖으로도 그 내적 변화가 드러나게 되는 그 전개 과정에 대한 주님의 설명이라고도 말했다. 그때 구원은 그냥 죽은 후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임을 말했다. 우리가 지나간 날들의 삶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믿으면(입술의 고백이 아니다!) 구원은 지금 여기서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구원 백성이 되고, 그 구원은 장차 완성된다. 우리가 완벽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였으므로 그 믿음으로 구원을 주신 것이다. 그 인격이 아직 구원받을 만한 덕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그가 과거 자신의 길이 잘못임을 인정하고 돌아서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 결단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때때로 우리들에게 당혹감을 줄 때가 있다.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도무지 구원받을 사람 같지가 않은 것을 보는 것이다. 때로는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는 사람의 삶이 더 부끄러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뭔가? 하나님이 우리를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하시기로 결심하실 때 무엇을 각오하셨을까 하는 거다. 그때 하나님은 믿는다고는 결단했으나 아직 삶이 따라오지 못하는 우리로 인해 하나님 자신에게 돌아올 부끄러움을 친히 감당하시기로 각오하신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부끄러움은 교회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 (특히 이제 막 구원받은 사람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의 그런 행동이 부끄럽지 않다는 게 아니다! 부끄럽다! 그런데 그렇다고 너무 못 참고 그러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그들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도 그 정도의 의식이 생기기까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주님이 다 감당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온 그 교회들도 함께!).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우리처럼 설익은 자들을 오직 믿음으로 구원하시기로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깜이 안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는 이후 내내 당해야 하는 수치를 묵묵히 감당하시는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질문) 이 부분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설교를 들을 때 이 부분에서 특별히 느낀 것이 있다면 말해 보라.
3. 구원은 그렇게 우리가 믿을 때 즉시 주어지기도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깊어지기도 한다. 먼저 신분과 소속의 변화를 겪고, 그 변화된 신분과 소속 안에서 인격의 변화를 경험해 가는 것이다. 팔복 -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에로의 변화, 의에 주리고 목마름 –은 바로 그 과정의 일부다. 그렇다면 긍휼함이란 뭘까? 긍휼히 여김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누가 무슨 짓을 하든지 별 말을 않고 미소로 넘어간다는 뜻은 아니다. 긍휼을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은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와 악을 행하는 악인을 미워하지만 죄에 종된 그들의 처지, 그들의 벗어날 수 없는 불쌍한 운명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려는 마음과 행동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그런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행동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긍휼히 여기는 자의 중요한 특징은 그들의 긍휼함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한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구원받은 자들이 받은 - 그리고 받고 있는, 또 받을 - 복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단순히 불우한 사람을 돕는 성품을 타고난 사람을 의미할 수 없는 것은 그들도 그렇게 행하는 순간을 제외한 다른 순간에는 여전히 악을 행하며, 하나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런 사람이 구원받기에 더욱 유리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후 점점 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나? 어떤 점에서 당신은 그렇게 되고 있다고 느끼는가? 구체적인 예를 들 수 있을까?
4.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엄청난 긍휼을 입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리며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을 보지 않았으면 자신들이 긍휼이 필요한 자들이라는 것을 몰랐을 건데 은혜로 눈이 열리자,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하게 되고 ... 그러다 보니 무엇을 알게 되었나? 자신이 하나님께 엄청난 긍휼을 입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모든 이해를 바꾸어 놓은 놀라운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게 됨과 아울러, 우리의 비참함과 추악함의 깊이를 봄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멀리 그리고 얼마나 낮은 곳으로 오셔야 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왜곡된 본성과 뒤틀린 모습과 선을 향한 철저한 불가능성을 알고 나니 왜 그 길밖에 없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안에 긍휼히 여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백성인 우리 안에서 긍휼은 어디서 시작되나?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의 절정,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질문) 당신은 어떤가? 팔복의 이런 과정은 지금 당신 안에서 시작되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과정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5.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복의 약속에 관한 것이다. 그 약속은 그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긍휼이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약속은 자칫 우리를 헛갈리게 한다. 구원이 마치 우리의 긍휼히 여기는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불편하니 그렇게 해석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런 해석은 성경이 그토록 강조하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복음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팔복을 시작하면서 설교자가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때 설교자는 팔복을 단순히 “이렇게 하라! 그러면 이런 복 받는다!”라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것은 구원받은 자들 안에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복된 과정들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순환하며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가난함을 느끼는 과정, 애통하는 과정 온유해지는 과정 등은 한번이 아니라 순환하며 계속되며, 그것이 일어나는 깊이에 따라 천국과 위로, 온유해 짐 등은 더 깊게 누려지게 된다고 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도 동일하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미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긍휼히 여김은 새로워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더 깊이 경험되어야 할 복이다. 그러니 그런 복을 누가 더 깊이 경험하겠는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 복음의 은혜를 반영하여 더욱 복음적 삶을 사는 사람이다.
질문) 당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더 깊이 경험하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당신 주변에 당신이 긍휼히 여겨야 할 사람이 생각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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